'갑골문자'는 말라리아 때문에 발견되었다는 진실

'갑골문자'는 말라리아 때문에 발견되었다는 진실






청나라 말기, 하남성의 소둔의 주민들은 땅을 일구던중에 부서진 뼛조작을 종종 발견하곤 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19세기 말부터 주민들은 이렇게 나온 뼈가 전설속에나 나오는 용골이며, 여러 질병을 낮게 한다고 믿게 되었고 자신이 직접 사용하거나 한의원에 팔았다고 합니다.

1899년 국자감의 금석전문학자인 왕의영은 중병(말라리아)에 전염되어 북경으로 약재를 사기위해 갔었는데 약재 중에 용골이 포함된 것을 발견합니다.
왕의영은 한약방에서 구해 온 용골에서 고서체의 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것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왕의영의 제자인 유철운 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진귀한 것이 발견되었다면서 왕의영에게 알림과 동시에 한약방을 통해 그 출처를 조사한 결과 하남성 안양의 북서쪽에 있는 소둔 부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죠,
이곳은 옛부터 온나라의 도음 소재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전설로만 떠돌던 은나라의 실체가 비로소 드러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곧 용골에 새겨진 부호가 은나라의 문자임을 알아보고 용골을 수집하여 연구를 시작합니다. 용골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중국은 물론, 미국과 영국, 일본의 학자들은 용골을 수집하기 시작하였고, 용골의 가격은 순식간에 100배넘게 뛰어 올랐던 것입니다.






문자가 새겨져 있는 용골은 실은 거북이의 등껍질과 소의 어깨뼈로 은 왕조의 점쟁이가 그 뒷면을 불로 구워 표면에 새간 금이나 쪼개지는 모양에 의해서 길흉을 점친 다음 그 곁에 점의 내용을 새긴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점괘의 짧은 문장을 새긴 문자가 거북 갑각과 소의 뼈에 새겨졌다 하여 갑골문자 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은은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중국 최초의 왕조로서 상이라고도 합니다.
창건 연도는 기원전 1700년경, 몰락한 시기는 기원전 110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기원전 1400년경 수도를 안양에 정했습니다.
왕이 지방장관을 임명하는 정치를 펼쳤으며 지방에는 귀족계급과 주로 농사를 짓는 백성이 함께 존재하였습니다. 이 시대부터 중국인의 문자가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뼈로 점을 치는 유행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은나라에서는 신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산 사람을 신에게 바치는 희생제사가 유행하였고 이러한 희생물로는 주로 전쟁 포로들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동물 그림이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청동 그릇에 술과 음식을 담아 신에게 바치는 제사 의식이 치뤄졌으며, 또 은나라에서는 신의 뜻을 알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거북의 등껍질이나 소 어깨뼈를 이용하는 특이한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은나라 사람들이 평소 점을 쳤던 것은 모든 생활이 신에 의해 좌우된다 믿었기 때문으로 그런 까닭에 은나라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이나 또는 기후제에 반드시 신의 뜻을 물었다고 합니다.

이때 거북이의 껍질이나 소의 어깨뼈를 이용한 것은 거북과 소를 신성시 했던 데에서 이유가 이씅며 불에 달군 쇠붙이는 하늘에서 번쩍이는 번개를 상징하였고, 거북 껍질이나 소뼈는 신의 뜻이 전달되는 매개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쪼개지는 모양을 보고 신의 뜻이라 생각했는데
이때의 문자는 상형에거 출발하지만 점차 추상성을 띄기 시작하고 훗날 표의문자인 한자의 기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수리학자 나가다 히사시는 이와 같은 점치기가 성행했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거북이 껍질을 이용한 점은 수렵민족의 전형이며, 거북 등껍질에 점치는 글자를 새겨서 그것을 불에 쬐든가, 구운 부젓가락을 대면 금이 생기게 된다
그 조의 형태로 신의 뜻을 판단하여 길흉을 정하게 된다
거북 껍질에 새긴 문자의 균열을 문자로 나타나고 있으며 갑골문은 거북이의 경우 주로 배껍질을 썻다고 한다. 등껍질은 배껍질보다 아랙길이었다 끌같은 도구로 타원형으로 긁어낸 한 면의 자국에 불을 붙이 ㄴ쑥을 대고 지지면 '부~욱'하며 갈라지는데 그 균열의 모양을 점친다는 글자 복(卜)을쓰고 그 소리를 卜으로 삼았다'



희안하게도 110년전의 갑골문자 발견 이전에도 아무도 이 거대한 문명의 흔적이나 실존을 상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완전히 잊혀진 것이었죠,
망한 은나라의 폐허 또는 터라는 뜻인 갑골문들은 은허에서 1899년 극적으로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3000년 이상 땅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죠,
은허는 위에서 말한 하남성 안양의 소둔 부근이며 중국 정부는 20세기 중국 고고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과 업적으로 은허의 발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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