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배경,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아본다. 첫번째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서들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어느 날 갑자기'일본군이 침략해 들어왔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부산 앞바다에 일본배들이 몰려왔다.
신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들이 갑자기 조선을 침략했다.
하지만 조선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일본군의 기습 때문에 조선군은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20일만에 한양까지 도달한다.
대부분 이렇게 서술되어 있는 것이죠,,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선봉장은 1군 사령관 고니시 유키나가,2군 사령관 가토 기요마사 두 명이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일본 규슈 지방의 영주를 지내고 있었는데 사실 그는 조선과의 전쟁을 반대한 사람이었는데, 고니시 유키나가가 조선과의 전쟁을 반대한 이유는 간단하게 두가지의 내용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일본은 오랜 통일전쟁을 끝내고 마침내 전쟁이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오랜만에 평화를 달성했는데 명나라에 쳐들어간다는 이유로 조선과 전쟁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또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독실한 천주교신자였던것, 전쟁을 바라지 않았고 특히 아무런 실익이 없는 외국과의 전쟁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니시 유키나가는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정말로 오랫동안 노력했던 이유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조선이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도록 노력한 것도 고니시 유키나가였는데,
"조선이 일본에 통신사를 보냈으니 조선과 싸울 필요가 없지 않느냐?"라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에 쳐들어갈 것을 선언하고 조선과 싸움을 준비하는 몇 년 동안 고니시 유키나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전쟁을 막으려고 했는데. 고니시 유키나가와 한통속으로 조선과의 전쟁을 막으려 했던 쪽은 대마도 였습니다.
대마도는 일본에 속하기는 하지만 조선과 통상을 해야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대마도에는 거주민이 모두 먹고살 만큼의 쌀이나 물품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에서 쌀을 가져와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과 전쟁이 발발하면 대마도 주민들은 기근에 시달릴 게 뻔했던 것이죠
전쟁 시기에는 일본에서 도와준다고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대마도와 조선 간에 관계가 틀어지면 이후의 생존에도 문제가 생기게 될께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던 것이죠,
또한 대마도의 영주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이기도 했습니다.
둘은 서로 힘을 합져서 조선과의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데, 고니시 유키나가는 처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전쟁이 필요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고,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쳐들어갈 기미를 보이자 조선에서 사신이 올 테니 기다리라는 등의 연막을 쳤던 것이죠,
일본 내에서만 이런 노력을 한 것은 아니며, 고니시 유키나가와 대마도영주는 조선에 계속해서 사신을 보내게 됩니다.
조선의 사신이 일본에 자주 오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서로 잘 지내게 되면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화친책은 실패했다.조선은 일본을 오랑캐로 생각했고,일본과 친선을 도모할 생각이 아예 없었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의 통신사가 일본에 오면 최소한 통신사들이 일본의 사정을 알고,이대로 가면 전쟁이 나겠구나를 느끼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다독여서 전쟁이 나지 않도록 같이 노력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당시 일본이 조선에 쳐들어갈 것이라는 것은 주변국가들도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전 일본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오다 노부나가 때부터의 일본 최상부 권력자들의 꿈이 일본 통일 후 대륙으로도 진출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서들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어느 날 갑자기'일본군이 침략해 들어왔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부산 앞바다에 일본배들이 몰려왔다.
신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들이 갑자기 조선을 침략했다.
하지만 조선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일본군의 기습 때문에 조선군은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20일만에 한양까지 도달한다.
대부분 이렇게 서술되어 있는 것이죠,,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선봉장은 1군 사령관 고니시 유키나가,2군 사령관 가토 기요마사 두 명이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일본 규슈 지방의 영주를 지내고 있었는데 사실 그는 조선과의 전쟁을 반대한 사람이었는데, 고니시 유키나가가 조선과의 전쟁을 반대한 이유는 간단하게 두가지의 내용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일본은 오랜 통일전쟁을 끝내고 마침내 전쟁이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오랜만에 평화를 달성했는데 명나라에 쳐들어간다는 이유로 조선과 전쟁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또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독실한 천주교신자였던것, 전쟁을 바라지 않았고 특히 아무런 실익이 없는 외국과의 전쟁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니시 유키나가는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정말로 오랫동안 노력했던 이유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조선이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도록 노력한 것도 고니시 유키나가였는데,
"조선이 일본에 통신사를 보냈으니 조선과 싸울 필요가 없지 않느냐?"라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에 쳐들어갈 것을 선언하고 조선과 싸움을 준비하는 몇 년 동안 고니시 유키나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전쟁을 막으려고 했는데. 고니시 유키나가와 한통속으로 조선과의 전쟁을 막으려 했던 쪽은 대마도 였습니다.
대마도는 일본에 속하기는 하지만 조선과 통상을 해야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대마도에는 거주민이 모두 먹고살 만큼의 쌀이나 물품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에서 쌀을 가져와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과 전쟁이 발발하면 대마도 주민들은 기근에 시달릴 게 뻔했던 것이죠
전쟁 시기에는 일본에서 도와준다고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대마도와 조선 간에 관계가 틀어지면 이후의 생존에도 문제가 생기게 될께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던 것이죠,
또한 대마도의 영주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이기도 했습니다.
둘은 서로 힘을 합져서 조선과의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데, 고니시 유키나가는 처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전쟁이 필요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고,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쳐들어갈 기미를 보이자 조선에서 사신이 올 테니 기다리라는 등의 연막을 쳤던 것이죠,
일본 내에서만 이런 노력을 한 것은 아니며, 고니시 유키나가와 대마도영주는 조선에 계속해서 사신을 보내게 됩니다.
조선의 사신이 일본에 자주 오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서로 잘 지내게 되면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화친책은 실패했다.조선은 일본을 오랑캐로 생각했고,일본과 친선을 도모할 생각이 아예 없었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의 통신사가 일본에 오면 최소한 통신사들이 일본의 사정을 알고,이대로 가면 전쟁이 나겠구나를 느끼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다독여서 전쟁이 나지 않도록 같이 노력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당시 일본이 조선에 쳐들어갈 것이라는 것은 주변국가들도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전 일본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오다 노부나가 때부터의 일본 최상부 권력자들의 꿈이 일본 통일 후 대륙으로도 진출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