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시대의 거장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그의 일생, 사계중 '겨울' 듣기

바로크시대의 거장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그의 일생, 사계중 '겨울' 듣기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바로크시대의 거장
사계의 작곡가
비발디는 카톨릭사제였습니다.
별칭이 "붉은 머리의 사제"

그는 유전적으로 기관지가 약함으로 인해 천식이 걸리고 심해져 미사를 집전할 수가 없을 정도라서 사제 서품 후에 성당이 아닌 베네치아 피에타 고아소녀학교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당시 베네치아공국은  베니스축제에서 버려지는 아이들을 위해 4개의 고아원을 운영했는데 여기서 비발디는 바이올린 교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박봉에 교장이 몸이 약한 비발디를 싫어 해서 교사직을 간신히 유지 했지요.
결국 해고를 당하고 음악가로 유랑생활을 하던 비발디는 만토바 궁정악장에 초빙되었는데 여기서 소프라노 안나 지로를 만나게 되였고 이 둘은 비발디 오페라의 흥행으로 부와 명성을 얻고 베네치아에 금의 환향 합니다.

그 후에 고아학교에 다시 채용이 되었고 그곳에서 자기 연주회를 개최하면서 고아들을 무대에 세우게 함으로  더 큰 명성을 얻었는데 여자들이 무대에 설 수 없는 시대라서 비빌디만 무대에서 지휘하고 무대 휘장 뒤에서 여학생들이 비발디 곡들을 연주 했는데 이게 큰 히트를 쳐서 관광코스로 자리를 잡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때 만토바에서 만난 안나 지로와 무슨 연인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 법정에 서기도 했는데 늘 안나 지로가 언니랑 함께 했기 때문에 그의 결백은 당연히 밝혀졌습니다.
나중에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로 인해 루이15세가 베르사이유궁으로 초대하여 직접 연주를 하게 했지요.
오스트리아에서 기사 작위도 받았는데 이런 유명세 덕에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진짜 신부라서 그 번 돈을  고아원에 기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아원 원장은 늘 박봉을 주었고 박봉으로 고생하던 그는 나이든 62세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6세의 초청으로 베네치아를 벗어나게 되었는데요
그만 불행히도 그가  빈에 도착 하기 몇 일 전에 황제가 죽게되고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빈에서 가난한 음악가로 지내다가그냥 그렇게 쓸쓸히 빈의 허름한 여관방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엄청난 돈을 벌었으나 자기를 위해 쓰지 못하는 순수한 사제이자 작곡가 비발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는 천국에서 잘 살고 있을 것입니다.

바흐는 그의 곡을  보고 분석하며 공부를 하였고 그의 음악을 10곡이 상 표절 하기도 했습니다. 바흐에 많은 영향을 준 위대한 바로크의 기둥입니다.

참고로 바흐는 독일 작센공화국에서 태어난 헨델과 같은 작센태생입니다.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 이런 말은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만든 말입니다.
독일에서조차 음악의 아버지가 바흐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독일음악의 아버지 바흐 정도는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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